2018년 겨울방학
2018년도에 대학에 입학한 후 힘들었던 대입준비로 지친 스스로를 보상하기 위해 광란의 1학년을 보내며 공부와는 완전히 담을 쌓고 지냈습니다. 학점은 안중에도 없었고 밤낮 가리지 않고 매일 술을 먹었습니다. 학교 근처에서 자취를 했지만 자취방에서는 밤에 잠만 잤고 이외의 시간에는 술집, 피시방, 학교등을 번갈아 다니며 정신없이 1학년을 보냈습니다.
그렇게 처음으로 대학교에 입학하여 겨울방학을 맞이하였습니다. 대학교에 와서 친해진 친구들도 모두 각자 고향으로 내려갔고 저도 본가에 내려왔지만 마음이 어째서인지 뒤숭숭했습니다. 겨울방학에 물론 고향친구들과 놀기에 바빴지만 365일 늘 붙어 다니던 대학교 친구들과는 겨울방학이 되자마자 연락이 끊겼고 대학에서의 인연에 대한 회의감이 들기 시작했습니다. 대학에서의 얕은 인간관계가 더이상 저에게 큰 의미가 없다고 느껴졌고 대학에 온 내가 정말 하고 싶은 게 무엇인지 고민하기 시작했습니다.
고등학생시절에는 누구나 그렇듯이 대학을 가는 것이 인생 유일의 목표였고 그 다음은 생각해 본 적이 없었던 것 같습니다. 막상 대학에 오는 목표를 이루고 나니 새롭게 목표를 설정할 필요가 생겼습니다. 그래서 내가 잘하는 것이 무엇인지 생각해 보았습니다.
잘난 체하는 것처럼 보일 수 있겠지만 게임, 공부, 운동 무엇이든 제가 좋아하는 것은 어느 정도 평균이상으로 잘했습니다. 하지만 그 이상의 재능은 없었고 이것들을 인생의 업으로 삼기에는 참으로 애매한 재능이었습니다. 그래서 곰곰이 생각해 봤습니다. '내가 어떤 일이든 평균 이상으로 성과를 내는 이유는 무엇인지'
오랜 고민 끝에 결국 깨달았습니다. 나는 남들보다 노력하는 데에 재능이 있다는 것을. 무엇이든 열심히 한다는 것을. 생각해보니 운동이든 공부든 게임이든 처음부터 잘한적은 한번도 없었습니다. 남들보다 승부욕이 강했고 무엇이든 잘해지고자 노력하기에 평균이상은 됐지만 재능은 없어서 그 이상은 되지 못했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노력이 본인의 재능임을 깨달은 저는 노력이 배신하지 않는 것이 무엇일까 생각했습니다.그렇게 저는 그토록 지겹고 살면서 다시는 안 할 줄 알았던 공부를 마지막으로 해보자고 생각했습니다. 그렇게 저는 2018년 겨울방학부터 회계사시험을 준비했습니다.
2019년 1월
남들은 여행 다니며 겨울방학을 활기차게 보낼 때 저는 인터넷으로 그 당시 나무아카데미의 김현식 선생님의 회계원리를 사서 강의를 듣기 시작했습니다. 전 회계, 세무학과도 아니고 경영학과도 아니기에 회계라는 과목을 그때 살면서 처음 접해보았지만 생각보다 재미있었습니다. 차대변이 정확히 맞아떨어지고 어떠한 거래든 복식부기로 표현할 수 있다는 게 참 매력적으로 다가왔던 것 같습니다.
그렇게 회계원리를 완강하고 김용남 선생님의 원가관리회계 기본강의를 들었습니다. 저는 문과지만 수학에 꽤나 자신이 있었고 과목 특성상 원가관리회계가 쉽게 다가왔던 것 같습니다.(당시에는 이때의 자만이 나중에 얼마나 큰 결과를 초래할지 깨닫지 못했습니다) 이 정도 난이도면 학교를 다니면서 시험을 준비해도 무리가 없을 것이라는 근거 없는(?) 자신감이 저를 사로잡았고 2019년도 1학기를 등록하는 실수를 저지르고 맙니다.
2019년도 1학기를 병행하면서 공부를 계속하여 이어나갔고 낮에는 학교에서 수업을 듣고 나머지 시간은 학교 도서관에서 열심히 강의를 듣고 복습했습니다. 남들이 어려워한다는 경제학, 재무관리도 생각보다 수월했으나 세법학 개론은 저에게 너무나 어려운 과목이었습니다.(그렇게 세법이 몇년동안 세무사시험을 준비하는 제 발목도 잡을 줄은 몰랐습니다.) 세법학 개론 기본강의를 들으면서부터 학기병행을 하면서 회계사 1차 시험을 준비하는 것은 저같은 평범한 사람한테는 정말 미련한 짓이라는 것을 그때 깨달았습니다. 하지만 후회하기에는 이미 늦었고 유일한 방법은 1학기가 끝나고 2학기에 전력을 다해 회계사 1차시험을 준비하는 것뿐이었습니다.
그렇게 2019년 2학년 1학기를 끝내고 여름방학이 시작되었습니다. 학원 종합반을 다니는 친구들은 이미 기본강의가 끝나고 심화강의를 시작하는 시점인데 저는 아직 기본강의를 끝내지 못했다는 불안감이 급습했습니다. 마음이 급해져서 공부가 잘 잡히지 않았으나 최선을 다해 기본강의를 완강하니 10월 초였던 것 같습니다.
당연히 심화강의를 들을 시간은 없었고 바로 객관식을 들어가야 했습니다. 객관식 수업을 듣고 문제를 푸는데 회계학과 세법학 개론 문제가 잘 풀리지 않았습니다. 문제가 안 풀릴수록 오히려 마음은 급해졌고 급할수록 돌아가라라는 말과 정반대로 요약서를 찾기 시작했으며 밤에 잠을 자도 잠이 오지 않았습니다.
불면증이 있어보신 분들은 아실 텐데 일어나야 하는 시간이 정해져 있고 잠은 자야 하는데 잠이 오지 않으면 문득 '왜 잠이 안 오지?'라는 생각이 들기 시작하면서 더욱더 잠을 청하기 어렵다는 사실을 말이죠.
저는 항상 아침 7시 30분까지 도서관에 도착했는데 밤에 잠이 안 오니 점점 사람이 망가지기 시작했습니다. 도서관에 분명 하루종일 앉아있지만 멍해서 공부내용이 머리에 잘 들어오지 않았고 잠을 깨려고 커피를 마시고 산책도 하고 여러 방법을 동원해도 상황은 그다지 나아지지 않았습니다.
힘든 나날을 보내던 도중 드디어 회계사 1차시험 원서접수 기간이 다가왔습니다. 2020년 1월 말쯤에 원서접수 기간이 있었던 걸로 기억하는데, 불과 시험 한 달을 앞두고 있었던 원서접수를 하지 않았습니다. 그동안 공부한 것이 안까운 것은 사실이었지만 원서접수를 하지 않으면 편하게 잘 수 있다는 마음이 가장 컸던 것 같습니다. 비록 충동적인 결정이었다고 지금 와서는 회상해 보지만 결코 그 선택을 지금 후회하지는 않습니다.
그렇게 회계사 1차 시험장에 들어가지도 않고 시험을 포기한 후 패배감에 젖어 하루하루 시간을 보내다가 정신이 문득 듭니다.
이럴 바에 군대부터 해결하고 나중에 생각하자!